기록물 개요

국민의 정부: 15대 김대중 대통령 시기(1998.02 ~ 2003.02)

국민의 정부는 처음으로 선거를 통한 여야 정권교체와 함께 등장했다. 본격적으로 민주주의를 추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IMF 사태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출발해야 했다. IMF 지원을 받으면서 국민의 정부는 신자유주의의 경제 원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또는 이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문화정책을 위해 새로운 방향성을 설정해야 했다. 따라서 문화정책은 문화산업과 깊이 연계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국민의 정부로 하여금 앞의 김영삼 대통령 시기에 시작된 문화산업의 개념과 정책을 더욱 심화시키도록 했다. 즉, 이는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김영삼 대통령 시기에서 태동된 문화산업을 본격적인 궤도로 진입시켰음을 의미한다. 이를 역사적 제도주의 이론으로 보면 문화산업이 김영삼 대통령 시기에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되었고, 김대중 대통령 시기에는 이를 심화시켰다. 이는 ‘지속 관성 (path dependence)’ 시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정부는 문화의 영역을 종래처럼 비영리적 혹은 소비적인 차원에서만 보지 않고 영리적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산업과 융합시켜 갔다. 즉, 문화를 산업적으로 전환하여 생각하는 단계로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부는 기존의 전통 문화나 순수문화예술의 영역들을 산업 경제와 융합시키는 문화산업을 강조하였고, 문화산업이 문화정책의 중심 영역으로 자리 잡아 갔다. 또한 정부는 문화예술로부터 파생되거나 확산될 수 있는 다양한 부가가치의 가능성들을 개발하고자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을 제정하였다.

김대중 대통령 시기에는 이렇듯 문화산업을 강조하는 문화정책에 따라 기존의 문화체육부를 문화관광부로 변화시켰으며, 문화관광연구원과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을 설립하였다. 이와 함께 방송영상진흥원을 새롭게 개편하고, 문화관광부 안에 문화콘텐츠진흥과를 신설한데 이어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을 신설하였다. 또한 정부는 문화재관리국을 문화재청으로 승격시켰다.

국민의 정부 시기에는 이전 시기들과 대조적으로 문화와 관련 규제완화 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일률적으로 50%에 이르도록 관련 규제 완화 목표치가 제시되기까지 하였다. 이와 같은 문화정책의 규제완화는 무엇보다도 민주화의 진전으로 인한 표현의 자유 확대 등과 관련이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문화검열로부터의 진정한 자유는 김대중 대통령 시기에 이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앞에서 설명한 김영삼 대통령 시기의 한계성과 뚜렷한 차별성을 갖는다. 이러한 규제 완화는 또한 동시에 문화의 산업적 측면을 활성화하고 시장형성을 촉진하는 문화산업 진흥의 목적과도 연계되어 있었다. 이는 IMF 위기의 극복은 물론이고, 궁극적으로 문화를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경제를 병행 발전시키려는 정부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이처럼 이 시기 문화정책은 다원적인 민주주의와 문화와의 함수 관계를 보다 깊게 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보편적 세계주의를 지향하는 정부의 목표와 문화정책이 일맥상통 하며 세계화, 세계차원의 민주주의를 문화산업에 기초한 문화정책이 추구되었다.

정부는 동시에 순수예술 분야를 적극 지원하여 이 분야의 예산이 4배로 증가하였다.

또한 지방 자치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었는데, 정부는 「지방문화원진흥법」을 제정하여 각 지방별로 존재하는 문화의 개별성들이 국가적 차원의 다양성으로 연계되도록 하였다. 이러한 지방 문화가 세계로 뻗어 나가면서 세방화(glocalization)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정부는 이를 남북 관계에도 적용하였다. 이는 이전시기까지도 금기시 되었던 남북 관계가 새롭게 설정되는 시기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정부는 문화가 남북의 상호 교류와 협력에 기여하도록 하였다. 이전 시기 반공을 위해 활용되던 문화정책은 김대중 대통령 시기에는 북한을 바로 이해하고, 알기 위한 정책으로 변화했다. 이를 통해 북한의 영화, 노래 등이 도입되었다. 즉 이 시기에 남북관계가 갈등에서 문화적 화합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역사적 제도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시기는 노태우 대통령 시기에 제도화된 남북의 문화교류를 이어가고 확장시키는 지속 관성 (path dependence)의 시기였다고도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일본 문화 개방 등 세계의 문화에 대한 개방성이 확장되었다. 정부는 한국문화와 세계문화의 접촉 및 교류를 체계적으로 지원하였고, 공식적으로 일본대중문화에 대한 개방을 선언하기도 하였다. 이는 일본문화의 유입보다는 한국문화가 일본에 진입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어 장기적으로 한류의 원천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이 시기 한국영화의 국내 점유율은 50.1%에 이르렀으며, 국민의 정부 시기에 문화예산 1%의 목표가 달성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문화정책
관광 문화예술 문화재 미디어 종무행정
(종교)
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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