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정책 개관

박정희 대통령 시기

1962년 3월 22일 윤보선 대통령이 하야함으로써, 3월 24일에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었다. 박정희는 1963년 10월 15일 대통령선거를 거쳐 12월 17일에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1979년 10·26사건에 이르기까지 장기집권을 하였다. 박정희 대통령 시기의 노동정책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기는 1962년 3월부터 1971년 말 국가비상사태 선언 이전까지, 제2기는 1971년 말 국가비상사태 선언 이후부터 10·26사건까지이다.

제1기는 헌법 개정을 전면적으로 개정하고, 이어 노동관계법을 개정하는 등 법령 정비와 함께 노동행정을 강화해 나간 시기이다. 1962년 12월 26일에 개정된 헌법에서 근로자의 고용 증진에 관한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였으며, 근로자의 이익균점권 조항을 삭제하고 공무원은 법률로 인정된 자를 제외하고는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가질 수 없다고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을 제한하였다. 이러한 헌법 개정은 4월혁명기에 고양된 교원노조운동과 공무원의 단결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억압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이었다.

1963년 4월 17일과 12월 7일에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노동위원회법」을 개정하고, 12월 16일에는 「노동쟁의조정법」과 「노동위원회법」을 다시 개정하였다. 개정된 노동관계법은 대체로 노동조합의 조직과 운영에서 국가 권력의 개입 여지를 넓혀 준 것으로, 노동조합을 통제하고 노동운동의 발전을 저지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노동조합 설립을 신고주의에서 허가주의로 바꾸었으며, ‘공익을 해할 우려가 있다’고 행정관청이 판단하는 경우에 노동조합의 해산이나 취소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였다. 노동위원회법은 종래 3인 동수의 노·사·공익으로 구성되는 원칙을 깨고 공익위원의 수를 3인~5인으로 정하였으며, 공익위원만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다. 노동조합법에서 노사협의회 설치를 의무화함으로써 단체교섭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높였다. 또한 경쟁적 조합, 즉 복수노조의 설립을 금지하였는데, 이는 군부세력에 의해 재편성된 한국노총과 산별노조 이외의 조직 결성을 저지하여 노동조합운동을 통제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한편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되어 경제성장과 공업화로 고용이 증대하였고, 취업구조에서도 변화가 있었지만 실업문제는 심각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노동인력을 해외에 파견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1963년부터 독일을 필두로 인력을 파견하기도 했지만 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못되었다. 실업문제와 함께 저임금문제도 심각했는데, 정부는 이를 방치하였으며, 1960년대 말에 이르러 생산성 임금제 도입을 통해 임금인상을 억제하고자 했다.

1960년대 말 경제성장을 지탱했던 외국차관 도입과 수출증대가 위기에 봉착하자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조직적으로 통제하거나 봉쇄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행사를 사실상 금지하는 방향으로 노동통제정책을 강화해 나갔다. 그 대표적인 예로써 1970년 1월 1일에 제정된 「외국인투자기업의 노동조합 및 노동쟁의조정에 관한 임시특례법」(임시특례법)을 들 수 있다. 임시특례법은 외국인 투자기업의 노조 결성과 쟁의발생시 신고기관을 노동청으로 일원화하고, 중앙노동위원회의 강제중재제도를 적용하였다.

이러한 법률의 제·개정 외에도 개별적 노동관계와 노동시장, 사회복지와 관련된 법을 정비하였다. 「광산보안법」(1963.3.5),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1963.4.17), 「산업재해보상보험법」(1963.11.5), 「의료보험법」(1963.12.16) 등이 있으며, 1967년에는 기능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직업훈련법」을 제정하였다.

법령 정비와 더불어 노동행정을 강화하였다. 1963년 8월 26일에 「정부조직법」을 개정하여 보건사회부 노동국을 폐지하였으며, 8월 31일에는 보건사회부 산하에 노동청을 신설했다. 노동청 신설은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노동을 통제하고 인력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기 위한 목적이 내재된 것이다. 노동청은 근로감독행정을 점차 강화하였으며, 직업안정과 직업훈련에 역점을 두고 사업을 추진하였다.

제2기는 1971년 말 「국가비상사태 선언」과 1972년의 유신헌법에 따라 노동정책도 변화했던 시기이다. 박정희 정부의 노동정책은 법적인 제도를 통해 노동자들의 정치투쟁을 제어하는 한편 경제성장을 위해 노동력을 최대한 동원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었다. 이러한 노동통제정책은 1971년 말의 「국가비상사태 선언」과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그리고 1972년 유신체제 구축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1년 12월 6일에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다고 발표했다. 6개항으로 구성된 「국가비상사태 선언」은 “정부의 시책은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하고 조속히 만전의 안보태세를 확립”할 것이며, “일체의 사회불안을 용납하지 않으며 또 불안요소를 배제”할 것이며, “최악의 경우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자유의 일부도 유보할 결의를 가져야 한다”고 천명하였다. 이어서 12월 27일에는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야당의 반대를 물리치고 통과시켰다. 이 법은 대통령에게 비상사태 선포, 경제규제 명령, 국가동원령 선포, 옥외집회나 시위 규제, 언론 출판에 대한 특별조치, 단체행동권 제한 등을 행사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의해 헌법에 규정된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은 사실상 원천 봉쇄되었다.

이러한 강압적인 조치에 이어 1972년 10월 17일에 박정희 대통령은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10·17 특별선언」을 발표하였다. ‘10월유신’으로 불리는 이 특별선언으로 국회가 해산되고 정당 및 정치활동이 정지되었다. 효력이 정지된 헌법조항의 기능은 비상국무회의에서 수행했다. 12월 27일에 공포된 유신헌법에 의해 박정희 1인을 정점으로 한 유신독재체제가 출범하게 되었다. 국가보위법의 내용은 유신헌법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유신헌법 제29조는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은 법률이 보장하는 범위 안에서만 보장한다고 규정하였다.

박정희정부는 1973년 3월 13일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노동위원회법」을 비상국무회의에서 개정하였다. 또한 이러한 법률을 1974년 12월 24일에 일부 개정하였다. 두 차례에 걸쳐 개정된 법률은 대체로 강제중재가 적용되는 공익사업의 범위를 확대하고 노사관계에 대한 행정관청의 개입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무엇보다도 개정된 법률의 내용에서 핵심적인 사항은 노동조합의 조직형태와 노사협의회에 관련된 것이다. 단일조합으로서의 산업별노조라는 조직형태가 법률 차원에서 포기되었으며, 노사협의회의 기능을 강화하여 노사협의회가 노동조합을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1974년 12월 26일에는 「직업훈련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하여 사업주가 직업훈련을 실시하여 기능자를 양성하도록 하였다. 특별조치법에 따라 상시근로자수가 200인 이상이거나 전년도 고용근로자의 연간 연인원이 6만인 이상인 사업의 사업주는 의무적으로 직업훈련을 실시해야만 했다.

경제개발계획의 지속적인 추진과 성장 위주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으로 한국경제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다. 그렇지만 정부의 선성장·후분배정책에 의해 근로자들은 성과분배 과정에서 소외되어 열악한 작업환경과 저임금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노총과 산별노조는 노동운동에 소극적이었으며, 유신이 선포되었을 때는 이를 지지할 정도로 권력에 종속된 존재였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민주노조를 중심으로 임금인상, 근로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면서 생존권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나 정부는 탄압으로 일관했으며,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도시산업선교회나 가톨릭노동청년회를 용공이적단체로 몰아갔다. 권력과 자본에 저항한 민주노조운동은 YH사건으로 극점을 찍었고,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유신체제가 종언을 맞이하였다.

참고문헌
김삼수, 「1960년대 한국의 노동정책과 노사관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1960년대 한국의 공업화와 경제구조」, 백산서당, 1999.
김삼수, 「박정희 정부 시대의 노동정책과 노사관계-‘단결금지’의 노동정책과 기업내 노사협의제」, 「사회경제평론」 18, 2002.
이원보, 「한국노동운동사」 5, 지식마당,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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