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인권연맹 인권상 수상 연설(인권은 역사가 증명한 인류의 보편적 가치)
국제인권연맹 인권상 수상 연설(인권은 역사가 증명한 인류의 보편적 가치)
연설일자 1998.06.06 대통령 김대중 연설장소 국제
유형 기타 출처 김대중대통령연설문집 제1권 / 대통령비서실 원문보기
존경하는 '스코트 호턴' 국제인권연맹 회장,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먼저, 오늘 나에게 영예로운 인권상을 수여해 주신 국제인권연맹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내가 드리는 이 감사속에는 내가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수호를 위해 생명을 바쳐서 싸우고 있을 때, 나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세계의 모든 인권운동가들에 대한 감사도 함께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인권을 위해 싸워 오셨으며, 또 나의 목숨을 구해주고 안식처까지 제공해 주셨던 미국인 여러분을 나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나의 정치적 생애와 끊을 수 없는 유대감을 가지고 있는 미국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은 금년 2월에 한국 국민이 그토록 염원하던 여야간 정권교체를 50년만에 처음으로 이루어냈습니다. 그것은 아시아에서 이룬 또 하나의 민주주의의 승리였습니다. 지금 한국은 유엔인권위원국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인권보호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결과는 한국 국민이 기나긴 고난과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전진의 발걸음을 한시도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이 인권상은 내가 받을 영광이 아니라 나와 함께 투쟁하며 민주주의를 쟁취해 낸 우리 한국 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영예라고 생각합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나에게 주신 인권상은 나로 하여금 지난 과거에 대한 깊은 감회를 불러일으킵니다. 나는 일생동안 다섯번 죽음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 중 한번은 공산당에 의해서였고, 나머지 네번은 군사독재자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리고 6년을 옥중에서 지냈고, 10년을 망명과 연금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오늘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이제 한국의 대통령까지 된 것은 국제인권연맹과 세계 모든 민주지도자들이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서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신 덕분입니다. 나의 오늘은 바로 여러분의 승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한 성원만으로도 감사한데, 이러한 상까지 받게되니 내가 살아온 일생에 대해서 더욱 큰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나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세계 각국의 언론인으로부터 '당신이 대통령이 될 것으로 예상했었느냐'하는 질문을 자주 받았습니다. 그에 대한 답변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우리 국민은 반드시 민주주의를 회복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만일 죽지 않으면, 나는 국민을 위해서 일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비록 이대로 죽는다 하더라도 인권과 정의,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사람은 역사 속에서 패배하는 일이 결코 없기 때문에, 나는 우리 국민과 역사 속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것이 될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옥중에 있을 때 나는 끊임없이 죽음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 때 내가 겪은 어려움은 오늘 이 자리에서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나는 결코 국민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민주화를 위해 스러져간 우리의 동지들과 '김대중 석방'을 외치던 그 국민들을 생각했을 때, 나는 군부독재에 대해서 굴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나에게 곧 죽을 것이라고 말할 때에도, 나는 죽는 것은 두려웠지만 끝내 굴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는 때때로 거울속의 나의 얼굴을 감회깊게 응시하면서 그 고난의 40년간을 용케도 이겨내 준 나 자신에게 감사할 때가 많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금년은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권력과 김력의 폭압앞에 인권이 유린되고 있으며, 인권운동가들의 투쟁 또한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선진 서방국가들 뿐만 아니라 아시아, 동유럽 그리고 아프리카 등 도처에서 말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지역적 특성이나 문화적 특수성이 인권침해를 합리화할 수 없습니다. 인권은 이미 역사가 증명해 온 우리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에서는 그동안 '아시아적 가치'라는 것이 널리 논의되어 왔습니다. 아시아에는 서구적 개념의 인권이나 민주주의의 철학과 전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제건설을 위해서는 인권이나 민주주의는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한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아시아에도 서구 못지않은 인권사상의 철학적 기반이 있었습니다. 중국의 맹자는 서구 민주주의의 철학적 시조인 '존 로크'보다 2천년을 앞서서 '임금이 백성을 위해서 선정을 베풀지 않으면 백성은 이를 쫓아낼 권리가 있다'는 주권재민론(주권재민론)을 주장했습니다. 부처님도 “천상천하에 내 인격이 제일 존귀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족종교인 동학에서도 “사람 섬기기를 하늘 섬기듯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서구보다 2천년 앞서서 중국에서는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오늘의 군현제도를 실시했습니다. 또한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아무리 고관의 아들도 공개 국가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간부직 관리가 될 수 없었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한 개인의 힘만으로는 누구도 인권을 위해 싸울 수가 없습니다. 나만 해도 다른 시기, 다른 나라, 다른 감옥의 선배 인권영웅들로부터 큰 용기를 얻곤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선배영웅들은 이번에 유엔인권위원회가 '인권옹호가 선언'을 채택한 것을 지하에서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나는 이 선언이 금년 말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어 세계인권운동가들에게 큰 격려와 힘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나는 지난 반세기동안 인권수호의 고귀한 사명에 헌신해 온 국제인권연맹과 인권분야 NGO의 활약상에 대해 찬사를 보냅니다. 이제 21세기는 NGO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의 견해는 앞을 바라본 탁견이라고 하겠습니다. 지금 세계가 보다 나아질 수 있는 것은 전세계에서 활동중인 1만5000여개의 NGO가 환경오염, 분쟁, 인권 등 범지구적인 문제에 대처해 온 덕분입니다.

한국의 새정부는 명실상부한 '국민의 정부'로서 국민 개개인의 인권문제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일환으로써 인권법 제정과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등 제도적인 인권수호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지구촌 도처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우리 스스로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면서 세계 민주애호시민들의 성원을 받던 한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고난의 투쟁을 힘겹게 해나가고 있는 세계의 모든 박해받는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면서, 인권옹호가와 국제인권연맹의 헌신에 동참하는 것은 매우 기쁘고 영광스러운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우리 한국의 민주인사들은 여러분과 같이 인권대의가 세계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가도록 굳게 손잡고 나아가겠습니다.

오늘 밤 내가 민주한국의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신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의견이 있으시면 내용입력 후 제출하기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