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행정수도 건설을 결심하게 된 사연 | |||||
연설일자 | 2005.03.22 | 대통령 | 노무현 | 연설장소 | 국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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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성명/담화문 | 출처 | 원문보기 | ||
1975년 사법연수원에 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날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냈던 손정목씨가 도시학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강의를 한 일이 있습니다. 도시의 내력에 관한 여러가지 새로운 이야기에 걸쭉한 입담까지 곁들여진 재미있는 강의였습니다. 그 중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떠오르는 인상적인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은 만원이다. 서울 집중은 막아야 한다. 서울의 인구 집중을 유발하는 중요기관은 지방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하지만, 막상 ‘당신이 가겠느냐’고 물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말하는 사람 대부분이 힘 꽤나 쓰는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의 생각은 ‘나는 빼고 다른 사람들이나 보내라’는 것이다.” 대강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그 말의 취지가 서울의 분산을 찬성하는 것이었는지 반대하는 것이었는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나는 그 말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1977년 대전지방법원에 초임판사로 발령을 받았을 때 대전은 행정수도 바람으로 들떠 있다가 거품이 빠지면서 해약소송이 물밀 듯 밀려들어 계약해제에 관한 법리 공부를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1978년초 연두기자회견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행정수도 건설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 당시 나는 행정수도에 그다지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서울 집중의 폐해에 관해서 훨씬 이전부터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으므로 그저 좋은 일로만 생각했습니다. 여론도 별로 반대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때 나는 주말이 되면 경남 진영에 살고 계시는 어머니를 뵈러 대전과 부산을 자주 왕래하던 터라 기차를 탈 때마다 행정수도가 대전 부근에 오면 가까워져서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은근한 기대를 갖기도 했습니다. 1978년 부산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고, 1980년초 사회운동에 참여하면서부터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공해문제에도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1983년에는 젊은 청년들에 이끌려 공해문제연구소에 참여했었는데 얼마 안 있어 이 연구소가 내 사무실 한 켠을 차지하고 들어오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공해문제에 관해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공해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대도시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80년대 중반, 부산 문현동 산비탈 마을에 산사태가 나서 수십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 때 산비탈에 판잣집을 짓고 기대어 살다가 흙더미에 깔려 참변을 당한 피해자들은 대부분 ‘무작정 대도시로 몰려들어온’ 그야말로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이었습니다. 이미 연탄가스 사고에 관한 보도가 사라져가던 시절이었으나 그들은 여전히 연탄가스의 공포와 더불어 살고 있었습니다. 도시문제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입니다. 부산일보 도서실에 가서 스크랩을 뒤지고 일본어로 된 다섯권짜리 도시학 시리즈를 뒤적여 보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72년 국토기본계획에서부터 대도시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마련해 두고 있었으나 권력의 집중과 집중된 권력의 서울 집중으로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집중과 과밀현상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대도시 집중은 단순히 공해와 비용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신병, 마약, 청소년 범죄문제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을 뿌리째 황폐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도 그 때 알게 되었습니다. 이즈음부터 나는 부산의 인구를 늘려야 한다는 정책이나 운동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 왔고 지금까지 이 생각을 변함없이 지켜오고 있습니다. 도시가 클수록 건강하고 쾌적한 삶을 누리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덩치만 크다고 일류도시가 아닙니다. 인구가 많고 땅값이 비싸다고 살기 좋은 도시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최근 세계 유수의 컨설팅업체가 조사한 살기좋은 도시 순서에서도 서울은 세계 215개 도시 중 90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1991년부터 지방선거가 시작되었고, 나는 93년에 지방자치연구소를 열었습니다. 87년 대선을 앞두고 야당이 분열하였으나 통합의 희망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90년 3당 합당은 야당과 지역의 분열을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김정길 의원과 나, 그리고 몇 사람이 통합의 깃발을 지키고 있었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분열의 원인이 된 정치사회의 토대를 바꾸어야 했습니다. 관치경제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에는 사업자금 몇억원 빌리는 것도 본점 승인이 있어야 했고, 승인을 좌우하는 힘은 권력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결정권을 권력이 가지고 있으니 권력을 둘러싼 투쟁은 사생결단이 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권력의 편중과 소외가 지역으로 갈려서 장기화됨으로써 이른바 정치의 지역대결이 된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권력을 지역으로 분산하자. 다행히 91년부터 지방자치가 시작되었으니 지방자치를 통하여 권력을 지방으로 분산하면 지역대결도 좀 누그러질 것이다. 더욱이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풀뿌리라고 하지 않는가,’. 이것이 내가 지방자치연구소를 세운 이유입니다. 그 다음은 돈 문제입니다. 지방자치 그냥 되는가, 예산이 있어야 합니다. 국세를 지방으로 넘겨주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세금을 넘겨주어도 걷히는 세금의 절반 이상은 서울의 몫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세금을 지방으로 넘겨줘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사정을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국가가 거두어서 지방으로 나누어 주기 전에는 세금도 지역 편중을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수도권에서 거둔 세금을 다른 지방으로 더 많이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유럽연합은 개발기금을 조성해서 낙후된 신규 회원국을 지원하는 형태로 국가간에도 유사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결론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 서울의 각 구청에서 재산세를 걷으니 강남은 세금이 넘치고 강북 여러 구는 돈이 없어 구청 살림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금을 서울시가 걷어서 나누어 주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시도하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강남사람들의 강력한 반대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서울시 안에서도 일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전국 단위에서야 오죽하겠습니까, 당연히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해답이 그렇게 나와서는 안됩니다. 해답이 그렇게 나오면 미래를 기약할 수가 없습니다. 격차는 갈등을 불러오고 갈등은 분열과 대립으로 이어집니다. 역사의 모든 분열이 그렇게 생겨났고 분열한 역사는 모두 망하거나 엄청난 불행을 초래했습니다. 앞으로 이 문제의 해결은 국회의 입법권에 달려 있습니다. 국회가 잘 하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걱정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지방 출신이 수도권의 국회의원을 많이 했습니다. 유권자도 지방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서울만 아는 서울 유권자와 서울 출신 국회의원이 지배하는 국회가 생산하는 지방정책, 지방자치정책 아래서 지방의 삶이 어떻게 보장될 수 있겠습니까, 나아가 국토와 생태계, 지방공동체의 전통은 또 어떻게 보장되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그 동안 각 지방이 균등한 숫자로 선출하는 상원을 만들어 지방과 다양성, 국토와 생태계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견을 여러 차례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지방자치연구소를 운영하는 동안 동서갈등을 해소하고, 또 장차 수도권과 지방의 갈등과 대립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의 발전, 지방분권, 재원배분, 균형발전, 이런 정책을 통해서 지방을 살려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확고하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강력한 분권주의자, 균형발전주의자가 되었고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행정수도 이전을 생각하게 된 것은 대통령 후보가 되고난 후의 일입니다. 2002년 3월 대통령 후보가 되고 곧이어 6월 지방선거가 있었는데, 이 선거에서 진념 전 부총리가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되었고 나는 진념 후보를 지원했습니다. 당시 수도권 선거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은 수도권 규제 문제였습니다. 이미 선거가 다가오기 전부터 ‘수도권 규제 때문에 투자를 하려던 외국기업이 다른 나라로 간다. 한국기업도 확장을 하려면 수도권을 떠나야 하는데 지방으로 가지 않고 중국으로 건너가니 제조업이 공동화되고 그에 따라 일자리가 줄어든다. 수도권 규제를 해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고,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는 이에 반대하여 연일 강경한 성명과 시위를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한편 용인 지역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은 난개발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야기되고 있어서 수도권 규제를 강화하지 않고는 규제의 실효를 거둘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수도권 규제를 더 강화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나라는 날로 큰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나는 진념 후보에게 수도권 규제해제 대신에 수도권의 계획적 관리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당 정책실에 행정수도 이전계획을 주문했습니다. 행정수도 충청이전, 공공기관 지방이전, 국가균형발전정책으로 지방을 발전시키고, 수도권은 계획적 관리를 통하여 동북아 경제 중심도시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었습니다. 당시는 행정각부 지방 분산 이전 주장이 여러 곳에서 나와 있던 터라 행정수도 이전도 그리 생소한 개념은 아니었고, 행정수도 이전을 포함한 과감한 분권,분산 정책과 수도권의 계획적 관리개념을 통한 규제개선은 수도권과 지방의 정치적 빅딜로, 함께 윈-윈 할 수 있는 정책으로 보았습니다. 그 이후부터 당 정책위는 이 정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최종적 검증과 발표시기의 전략적 선택을 위하여 대외비를 유지하다가 선거대책본부 발대식과 더불어 발표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은 이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다가 나중에는 행정 각부를 전국 각지로 분산하는 정책을 내놓았고, 나는 행정각부 분산은 국정의 원활한 통합, 조정에 지장이 생긴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결국 지금 와서 보면 한나라당의 반대로 정부 기능의 일부가 찢어지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양쪽의 주장이 다 받아들여진 셈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대로 해 보고 결과에 대한 평가는 훗날 국민들의 판단에 맡기면 될 것입니다. 지금 평가해 보니, 나는 강력한 분권주의자, 분산주의자이기는 하나 행정수도 이전계획은 분권전략이라기보다는 수도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적 성격이 더 강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캐나다 밴쿠버같이 쾌적한 도시를 꿈꿉니다. 그러면서도 서울로, 서울로만 올라오고 있습니다. 수도권이 사람답게 사는 도시가 되게 하려면 더 이상의 인구증가는 막아야 합니다. 그것이 수십년간 지속되어온 수도권 규제의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수도권 규제정책은 수도권의 집중과 기형적 비대를 막지도 못하면서 오히려 수도권의 성장을 왜곡시켜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경쟁력의 논리와 난개발에 밀려 더 이상 유지하기도 어려운 정책이 되어 버렸습니다. 풀어야 합니다. 그러나 함부로 풀려고 하다가는 지방이 들고 일어나 나라가 결단날 것 같은 싸움만 벌어지고 결국 규제를 풀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어찌어찌 밀어붙여 규제를 푼다고 해도 싸움의 와중에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규제만 덜컥 풀어버리면, 수도권은 그날로 난개발에 밀려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행정수도와 균형발전, 새로운 비전과 계획에 따른 수도권 규제개혁, 이것이 후보시절 수도권 문제 해결을 위한 나의 정책대안이었습니다. 실제로 대통령이 된 이후 바로 파주 LCD단지 건설 허가를 내주었고 그해 연말 삼성전자의 기흥공장과 쌍용자동차의 평택공장 확장을 승인했습니다. 나는 행정수도 이전과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의 추진으로 지방을 설득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허가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수도권은 행정수도 이전의 일부 대가를 미리 받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는 현재 동북아 경제허브 도시, 국제적 비즈니스 도시로서의 수도권 관리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것은 양적으로 더 비대해져 교통, 공해, 과외와 학교폭력, 끝없이 올라가는 집값에 시달리는 도시가 아니라 질적으로 더 쾌적하고 경쟁력 있는 첨단 지식서비스 도시를 지향하는 계획입니다. 후보시절, 그리고 당선자 시절,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한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2003년에는 다른 사안으로 국민투표 문제가 큰 시비거리가 되어 있어 이야기를 꺼낼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연말에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법이 통과되었으니 국민투표를 붙이자 할 일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정부로서는 수십 번의 토론회와 공청회를 열었으나 여야 간 큰 충돌이 없었기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따라서 토론과 설득이 부족한 결과로 비춰지게 되었습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공공기관 지방이전으로 손해를 보게 되어 있는 분들에 대해서는 손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대책을 세워 설득할 일입니다. 그렇지만 본인의 이해관계가 아니고 명분으로 반대하는 분들에게는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수도권 규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행정수도 이전도 안하고, 공공기관 이전도 안하고 수도권 규제만 덜렁 풀자는 것인가, 그것이 타당한 일인가, 가능하기는 한 일인가, 아니라면 수도권 규제는 그대로 두자는 말인가, 그러면 수도권의 미래는 무엇인가, 나는 대한민국의 균형발전과 수도권의 새로운 비전은 우리들의 꿈의 크기이자 미래에 대한 상상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행정수도를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그가 국가적 지도자의 자리에 서게 되고 선거에서 표를 모을 일이 없다면 그 역시 이만한 꿈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 분이 행정수도 이전을 시도한 것은 사리사욕이 아니라 국가의 장래에 대한 지도자로서의 안목을 가지고 한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통과된 행정중심 복합도시 특별법이 공포되었습니다. 앞으로 국회의 논의와 국민 여러분의 의견을 존중해서 수도권과 지방이 더불어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원칙을 가지고 차근차근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