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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 시기는 헌법과 노동관계법 제정을 통해 노동자의 권익과 노동운동의 법적 기초가 되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노동관련 기구도 정비되었다. 하지만 노동관계법으로 노동자의 법적 권리가 보장되었어도 노동현실에서 국가와 사용자에 의해 무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따라서 이승만 정권기 노동정책은 법적 제도와 현실 사이에 상반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전국적인 노동조직이었던 대한노총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것도 노동문제 해결에서 최대의 걸림돌이 되었다. 이승만 정권기 노동조합의 정치성과 자주성 상실로 인해 노동환경은 개선되지 못했고, 노사관계도 불평등하였으며, 고용·복지의 정책적 입안도 방치되고 있었다.

윤보선 대통령의 재임기는 비록 1년 7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노동정책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는 4월혁명으로 노동운동이 활성화된 시기로 노동정책은 이승만 정부와 비교하여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으며, 기존의 노동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제2기는 군부쿠데타 이후 시기로 4월혁명으로 고조되었던 노동운동이 단절된 시기이며, 노동정책이 군부세력에 의해 강압적으로 통제된 시기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기는 크게 2기로 구분해서 노동정책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제1기는 1962년~1971년 말 국가비상사태 선언 이전까지이다. 헌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하고, 이어 노동관계법을 개정하는 등 법령 정비와 함께 노동행정을 강화해 나갔다. 노동청을 신설하고, 개별적 노동관계와 노동시장, 사회복지와 관련된 법을 정비하였다. 제2기는 1971년 말부터 1979년까지의 시기이다. 국가비상사태 선언과 유신헌법에 따라 노동정책이 크게 변화했다.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노동위원회법」을 개정하여 강제중재가 적용되는 공익사업의 범위를 확대하였으며 노사관계에 대한 행정관청의 개입을 강화하였다. 또한 노사협의회 기능을 강화하여 노사협의회가 노동조합을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이 시기 한국노총은 노동운동에 소극적이었고 민주노조를 중심으로 생존권 투쟁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최규하 대통령 시기는 과도기로서 사회 각계각층으로부터 여러 요구가 터져나왔다. 노동계는 노동3권 보장, 근로조건 개선, 체불임금 지불, 휴페업 반대, 신규노조 결성, 어용노조 민주화 투쟁 등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하지만 신군부가 5월 17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으며, 5월 말에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설치하여 노동운동을 억압했다.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최규하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의 노동정책을 그대로 계승하였으며, 신군부세력에 순응하였다.

전두환 대통령 시기는 전반적으로 정부가 노동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특히 집권 전후로 실시한 노동계 정화조치와 노동관계법 개정을 통해 노동운동을 억압하고자 하였다. 정권 초기 노동조합법, 노사협의회법 등을 개정하거나 제정하였으며, 노동운동을 통제하기 위한 기구로 노동대책회의를 설치하였으며, 노동행정을 강화하기 위해 노동청을 노동부로 승격시켰다. 이러한 신군부권력의 억압적 노동정책으로 1983년 유화국면에 이르기까지 노동운동은 침체상태를 면치못했다. 하지만 정권 중반의 유화국면 이후 노동계와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노동관계법 개정 요구 등을 요구하여 관철시켜 나갔고, 최저임금법이 제정되는 등 노동운동이 활성화되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정부는 기존과 다른 새로운 노동통제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하였으며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노사협의회법」을 개정하였다.

노태우 대통령 집권 초기에는 사회 민주화의 요구가 거셌고, 노동계의 개혁 요구가 컸던 만큼 정부의 직접적 개입을 상대적으로 자제하고 노사자율적인 노동행정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완되었던 노태우 정부의 노동통제는 1989년 상반기 임금투쟁을 거치면서 바뀌어갔다. 임금가이드라인 제도가 부활됐고 무노동무임금제도, 경영권·인사권 수호원칙을 도입했다. 노태우 정부는 노동부가 마련한 방안을 통해 노동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정치활동금지조항과 쟁의의 장소제한을 개정하는 대신 총액임금제의 법적 근거조항 마련, 변형근로시간제, 시간근로자제도를 도입하려 했다. 하지만 전노협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진영이 전노협-업종회의가 주축이 되어 연대조직을 결성하고 투쟁의 강도를 높였다. 정부·재계와 노동계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은 채, 노태우 정부가 추진하려했던 노동관계법 개정·제정과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은 김영삼 정부로 넘겨졌다.

김영삼 대통령은 출범 초기 발표한 ‘신경제 5개년계획’ 등을 통해 노사관계 제도 개선을 공약했다. 집권 중반기까지 이렇다 할 정책이 추진되지 않다가 1996년 4·11 총선을 앞두고 노동단체와 시민단체가 각 정당에 노동관계법 개정을 요구하면서, 노동개혁문제가 본격화되었다. 4월 24일 김영삼 대통령이 ‘신노사관계구상’을 발표하고 공동선 극대화, 참여와 협력, 노사자율과 책임, 교육중시와 인간존중, 제도와 의식의 세계화라는 신노사관계의 5대 원칙을 밝히며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설치했다. 노사관계개혁위원회는 노동관계법 개정 쟁점사항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가 제출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에 노동시장 유연화와 근로자파견제도가 포함됐지만 복수노조의 도입과 교원단결권 보장을 기간을 유예하자 노동계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1996년 12월 16일 이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모두 총파업에 돌입하자 12월 26일 여당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야당의 반발까지 거세지자 1997년 1월 20일 김영삼 대통령이 여야영수회담을 제안하고 여당과 대화가 재개되자 야당은 노동관계법 재개정안 마련에 돌입했다. 결국 국회에서 노동관계법 개정 논의가 재개되었다. 재개정안에는 정리해고제 도입 2년 유예, 무노동·무임금의 법 조항 삭제, 대체근로부분에 신규 하도급 금지, 복수노조 도입 등이 포함되었다. 재개정을 거쳐 신노동관계법안이 마련되었다. 1997년 초부터 대기업 그룹들이 연쇄부도하며 경제위기가 심화되자 김영삼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IMF 이후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제 도입이 급물살을 타자 이를 논의하기 위해 김대중 당선자 주도로 노사정위원회가 발족됐다.

김대중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강력한 노동시장유연화를 추진했다. 노동계가 강력히 반발했지만 1998년 2월 6일 ‘2·6사회협약’에 따라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등이 도입됐다. 크게 세 분야에 걸쳐 구조조정이 진행되었는데 금융, 기업, 공공부문에서 예외 없이 수량적 유연성에 기초한 인원 구조조정이 진행되었다. 금융과 기업 부문의 구조조정은 금융감독위원회의 주도로, 공공부문 구조개혁은 기획예산처에 의한 경영혁신 및 예산편성 지침,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부문별 구조개혁은 노사정간 합의와 조율에 의한 합리적 대안모색 과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김대중 정부가 적극적 개입에 의해 진행되었다. 금융 구조개혁은 해당 금융기관의 인원 구조조정이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금융부문 1차 구조조정 과정에서 수많은 금융 노동자들이 해고되었다. 금융노동자들의 격렬한 저항이 이어졌다. 공공부문 구조개혁은 공기업과 산하기관의 조직과 인원 구조조정을 통해 추진되었다. 은행과 마찬가지로 공기업과 산하기관의 정리해고가 이루어진 후 신규인력은 비정규직 고용형태로 채용됐다. 공기업 경영혁신계획 추진이란 미명 아래 성과 중심의 보수체계인 연봉제와 계약제 도입, 퇴직금 누진제 폐지, 대학생 학자금 지원의 융자전환 등 복지후생제도의 축소로 이어졌다. 김대중 정부 시기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은 고성장과 저실업에 기반하고 있던 한국의 노동시장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경제위기 이후 대량실업으로 장기실업자의 비중이 증가했다. 한국 노동시장구조가 저성장 고실업 구조로 변했다.

노무현 정부는 후보시절부터 ‘사회 통합적 노사관계’를 내세우고 노사정위원회의 위상을 강화할 것을 공약으로 제시하였다. 하지만 2003년 6월 이후 정부가 발표한 <노사관계개혁방안>을 노동계는 노사관계 개악이라고 반발했다. 2003년 하반기에만 3명의 노동자들이 쟁의 기간 중 투신했다. ‘비정규직 사유 제한’도 노사 간 첨예한 쟁점 대상이었다. 2004년 3월 4일 노동부는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근로자파견법의 개정을 추진하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확정할 할 것을 밝혔다. 노동계에서는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사유를 제한하고 비정규 근로자 차별을 금지하기 위해 동일노동·동일임금을 원칙으로 하는 시행령 제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그 내용이 EU의 비정규고용규제에 관련한 지침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파견대상 업무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근로자파견법이 개정되는 것에 반발했다. 또 도산기업을 중심으로 정리해고절차에 대한 기존 제한을 더욱 완화하고 재량근로시간제 적용 확대, 임금 유연성 제고를 이유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결국 2년의 기간 동안 유예되었다. 하지만 2006년 11월 30일,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노동위원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갈등의 과정 중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서 탈퇴했다. 이후 민주노총의 입장은 ‘노사정 합의안’ 도출에서 배제되었다. ‘기간제 근로자법’에 따라 근로자파견 대상 업무는 Positive 방식이 유지되고 파견기간 2년을 초과할 경우 사용사업주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법제도가 도입되었지만 비정규고용의 확대와 실업문제 등 노동시장의 불평등 상황이 노동시장에 확산되어 갔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노사관계 법치주의 확립’,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및 규제개혁을 노동정책의 기본과제로 삼고, 노사관계 법치화 확립,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관련 법 개정, 기간제 근로와 파견근로의 유연안정성 제고를 위한 비정규직 관련 제도 보완, 선진형 노사관계제도 개선, 취업규칙 불이익변경법제 개선, 임금·근로시간·고용 유연화, 노동규제 전면 재검토 등을 구체적 실천 계획으로 제시하였다. 정부는 2008년 하반기부터 비정규직 사용기한 연장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였다. 또 2009년 중반 이후에는 비정규직 확대를 위한 법 개정 재시도, 공공부문 인력 구조조정 정책의 추진, 민간고용산업 육성을 위한 직업안정법 개정 시도 등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다시 시도하였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고용창출 능력을 강화하고 실업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중장기적인 대책은 부재하였다. 노조를 정책 논의와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정책방향과 맞물려 노사의 신뢰 관계는 악화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는 ‘강한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의 전면적 실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조 가운데 노동정책은 성장을 우선시하는 경제정책의 하위개념이라는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정부가 이런 기조를 고수함으로서 이전 정부가 시도했던 노사정위원회 등 사회적 대화기구를 매개로 한 정책 실행이 사라지거나 그 의미가 크게 후퇴했다.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은 노동보호, 고용 안정 및 노동 기본권 보장보다는 국가경쟁력 강화, 경제살리기, 규제개혁 등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하위 요소로 노동정책을 위치 설정했다. 성장과 고용의 연관성이 약화되고 분배구조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 사회양극화가 더욱 심화되어 근로자 생활과 노동복지가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집필 내용은 연구자의 학문적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대통령기록관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연구기관
    성균관대학교 산학협력단 동아시아역사연구소
  • 집필자
    이신철(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
    임송자(순천대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정진아(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교수)
    장미현(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연구소 박사후연구원)
    한봉석(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장다혜(연세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