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어느 때보다 다변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격차와 불균등의 확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격차의 확대를 방치할 때 분열은 커질 것이고 사회발전은 그만큼 더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양한 가치와 관점이 공존하고 번영하는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격차로 인해 넓어진 간극을 메우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기록은(또는 기록관리기관은) 이러한 과정에서 어떠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까?
2022년 9월 19일부터 23일까지 5일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최된 제9회 세계기록관리협의회(ICA) 연례회의는 ‘bridging the gap’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기록과 기록관리기관의 사회적 역할을 타진해 보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다리라는 은유가 기록이 과거로 또는 미래로 가는 다리임을 상징하는데 사용되었다면 여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현존하는 간극을 줄이는 전략적 자산으로 보고자 한 것이다.
이번 연례회의에서는 아카이브가 다루어야 할 간극을 크게 디지털 간극(Digital Gap), 문화적 간극(Cultural Gap), 민주화의 간극(Democratic Gap)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디지털 간극은 기술 전파의 불균형, 문화적 간극은 가치와 정체성의 소외, 민주화의 간극은 권리의 불평등 문제를 각각 상징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세미나 세션은 이러한 세 가지 세부 주제로 8 나뉘어 3일간 진행되었는데 대통령기록관에서 참석한 세미나들은 주로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집단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공유하는 문제(소수민족, 이민자, 원주민 등), 사회적 약자 또는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문제(디아스포라, 성소수자, 유색인종, 나치독일 유태인 등), 소통의 강화 문제(기록 생산자의 참여 유도, 디지털기술을 이용한 물리적 거리 극복, 기록관리기관 간 네트워킹, 타 전문가 집단과의 거버넌스 구축 등), 디지털 신기술을 기록관리 분야에 적용하는 문제(AI, IoT, 블록체인, LoD 등)를 다루었다.
이러한 세미나 세션을 통해 발표자들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큰 틀에서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기록관리기관의 역할과 사명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동안 과거와 현재 또는 현재와 미래를 잇는 것, 즉 남겨진 기록의 보존 또는 기록화를 통해 사회상을 후대에 전승하는 것이 우리의 주요한 사명이었다면 현재와 현재를 잇는 것, 즉 현재를 사는 대상의 권리와 가치 보호에 관해서도 관심을 높여야 할 때임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컸다. 둘째, 다변화되고 복잡해지는 사회 변화를 업무에 유동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소외된 집단의 목소리(관점과 가치관)를 배제하지 않고 사회를 구성하는 가치와 정체성을 균형 있게 내포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불평등이나 불균등 또한 그 자체로 사회상을 보여주는 요소이므로 기록관리 기관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공론화가 선결되어야 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셋째, 기술의 변화 추이를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생소했던 기술들을 기록관리에 적용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고 있는 만큼 이러한 도구들이 기록과 기록관리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어떠한 가능성을 가졌는지에 대한 발 빠른 연구와 대응이 선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메시지들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겠지만 개인적으로 기록관리를 하면서 어떠한 철학을 동력으로 삼고 있는지, 변하는 세상을 보지 못하고 발밑에만 눈을 두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추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었다. 기록은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와 정체성을 내포하고 대변하는 자산이며, 사회가 공유하는 공통의 기억을 형성하는 능동적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어떻게 가 문제일 뿐이다. 목적을 확인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숙제를 잔뜩 받은 것 같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