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 처음 태극기를 달고 우승한 최초의 한국인은 서윤복 선수였다. 미 군정기였던 1947년, 제51회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미군 군용기를 얻어타고 미국에 도착한 서 선수는 오랜 비행으로 파김치가 되었다. 그가 헌 스파이크슈즈에 손수레 바퀴의 고무를 덧댄 운동화를 신고 달린 최고기록은 2시간 39분. 당시 세계기록보다 14분이 느렸다. 서윤복은 막상 자신이 없었다. 스승인 손기정 감독은 "나에게 민족은 있었지만, 국가는 일본이었다. 그러나 너는 조국을 위해 달릴 수 있다는 자긍심이 있지 않으냐“며 서 선수를 일으켰다. 서윤복 선수는 손기정 감독, 남승룡 코치와 함께 작전을 짰다. 먼저 3,000m를 힘껏 뛰면 승산이 있다는 생각으로 레이스를 시작했다. 결과는 2시간 25분 39초. 세계신기록이었다.
손기정 감독은 서윤복을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 대회 사상 처음, 동양인 선수의 우승에 현지 언론들은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 선수단은 곧바로 귀국하지 못하고 43일간이나 미국 각지를 돌며 교민들의 축하세례를 받았다.
선수단이 귀국한 날, 사람들은 집집이 30원씩을 거둬 시민환영회를 열어주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은 “나는 몇십 년 동안 독립운동을 했는데도 신문에 많이 나오지 못했는데 그대는 겨우 2시간 25분 39초를 뛰고도 연일 신문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구나.”(3)라며 농담 섞인 축하인사를 했다.
김구 선생은 경교장을 찾아온 서윤복 선수에게 “우리의 태극기를 해외에 휘날리게 한 장한 청년” 이라며 ”서윤복이 조선을 하나로 만들었다.“고 기뻐했다. 김구 선생은 축하의 선물로 ‘족패천하(足覇天下 발로 천하를 제패하다)’라는 붓글씨를 써주었다.
3년 뒤인 1950년 4월 19일, 보스턴에서 다시 코리아의 기적이 일어났다. 한국시각으로 20일 오전 6시, 새벽에 울려 퍼지는 스피커의 애국가 소리에 시민들은 잠결에도 우승을 직감했다. 감격에 찬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1등에 함기용, 2등에 송길윤, 3등에 최윤칠이라는 승전보를 전하고 또 전했다.
선수단 일행은 귀국하자마자 공항에서 바로 경무대로 갔다. “외교관 몇백 명 보내는 것보다 훨씬 애국했다”(5)라며 이승만 대통령은 눈물을 글썽였다. 이 대통령은 서울운동장에서 국민 대환영대회를 열고 선수들의 노고를 위로하며 세계를 제패한 기쁨과 영광을 기념했다. 한 국가가 국제마라톤에서 금, 은, 동메달을 휩쓸기는 사상 처음이었다. 이 기록은 2007년 케냐 선수들이 베를린마라톤에 출전하기 전까지 무려 57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
세계 어디서도 코리아를 알지 못하던 광복 직후의 혼란기에 태극기를 달고 세계를 제패한 최초의 마라토너 서윤복! 정부수립 후 처음으로 코리아를 빛낸 함기용! 지금과 같은 포상도, 미래의 보장도 없던 그때,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도 조국을 알리기 위해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두 영웅이 있었다.
(※ 대통령의 특별한 만남은 대통령기록포털 – 기록콘텐츠에서 볼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