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의 원탁에 앉은 보통사람
서민의 음식이자 국민 간식인 김밥, 순대, 어묵이 감동의 메뉴로 집중 조명된 건
노태우 대통령 취임 축하행사 ‘보통사람들의 밤’에서다
연회에는 버스운전기사와 안내양, 전화교환원, 음성나환자, 지체장애인, 소년 소녀 가장 등 각계각층의 보통사람들이 초대됐다. 그 수가 3천 5백 명이었다. 사람들은 대통령이 행사장에 들어오기 전부터 차려진 소주, 막걸리, 김밥과 순대, 어묵을 자유롭게 먹으며 잔치 분위기를 자아냈다.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국민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직선제를 통해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은 취임 축하행사에서 시민들과 상석의 구분이 없는 원탁에 둘러앉았다.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뛰어난 능력과 재주가 없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 대통령이 돼 취임식을 마치고 이 자리에 서게 되니 감회가 깊습니다.”(1) 노 대통령은 ‘각하’라는 호칭을 사양하며 자신을 만화나 코미디의 소재로 삼아도 좋다고 말해 진짜 보통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세계정세에 발 빠르게 대응해 헝가리를 시작으로
동유럽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맺고 중국과도
수교하며 적극적인 북방외교에 나섰다”
나라 밖에서는 세계사적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은 개혁과 개방을 외치며 시장경제의 물결을 타고 있었고 독일이 통일되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이러한 세계정세에 발 빠르게 대응해 헝가리를 시작으로 동유럽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맺고 중국과도 수교하며 적극적인 북방외교에 나섰다.
북방외교의 정점은 한국-소련 정상회담이었다. 노태우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1990년 12월 모스크바와 1991년 4월 제주도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협력에 합의하는 등 두 나라의 관계 증진에 큰 진전을 이뤄냈다.
특히, 제주도에서 열린 2차 정상회담을 위한 만찬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늦게 도착해 밤 11시가 넘어서 시작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두 정상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가며 회담의 좋은 결과를 위해 함께 노력했다.
이날의 만찬 테이블에는 제주의 분위기를 살려 전복, 광어, 연어, 홍합, 옥돔 등 해산물 모듬 요리가 올랐다. 회담이 열린 호텔에서는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을 기념하여 소련산 보드카로 만든 칵테일 ‘페레스트로이카’가 일반인에게 소개돼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좋아하는 음식은 평범하면서도 특별했다.
청와대 조리장을 맡았던 이근배 조리장은 “대통령이 몸이 아플 때 특별히 찾는 음식이 있었어요. 몸이 좀 으스스하다 싶을 때마다 갱시기국을 찾으셨죠.”(2)라며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이 최고의 보양식이라 말한다.
갱시기는 갱죽을 말하는 경상도 이름으로 멸칫국물에 푹 익은 김치와 콩나물, 떡 점이나 밥을 넣고 끓여낸 서민 음식이다. 어렸을 때 먹던 아욱국과 장떡, 빈대떡 등도 자주 즐기는 편이었다.
(1) 인용 -「노대통령 “국민들 바람과 질책의 목소리 모두 수렴」 『매일경제』 1988.2.27.
(2) 인용 - 이근배 『청와대 요리사』 풀그림 P116
(3) 인용 -「청와대 방문, 부총리 회담 이모저모」 『국민일보』 1992.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