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희망, 감격의 시대
IMF 구제금융 상황에서 청와대에 들어온 김대중 대통령은 모든 경비의 절감을 지시했다.
IMF 구제금융 상황에서 청와대에 들어온 김대중 대통령은 모든 경비의 절감을 지시했다. 과거 호텔 직원들이 파견되어 나왔던 공식행사도 50명 이하 규모는 관저 요리사들이 모두 소화했다. 운영관인 문문술 씨는 반찬가짓수를 세 가지로 줄이라는 명령을 받고 최소 원가로 만들 수 있는 음식으로 식단을 짜기 시작했다. 영부인인 이희호 여사는 식자재 장만에 낭비가 없는지 주방 냉장고를 수시로 열어 점검했다.
대통령은 이전 식사 때 남긴 음식을 다시 차리라고 하면서 운영관에게 밥상 물가를 자주 물었다. 문문술 씨는 “식사를 하시면서 가끔 그러십니다. 요즘 물가는 어떠냐. 시장에는 가봤느냐, 뭐가 많이 가격이 올랐느냐, 또 반찬을 이렇게 보시면서 양파값은 좀 어떻더냐, 뭐 그런 걸 자주 질문 하셨지요.”(1) 라고 회고한다.
경력 있는 주방장이 청와대 운영관을 맡은 것은 문문술 씨부터다. 이전에는 대부분 비서관실 소속 공무원이 운영관을 하고 별정직인 요리사들이 실제 요리를 맡았다. 운영관은 대통령 내외가 먹는 음식의 메뉴를 결정하고 식재료를 구매, 직접 요리도 하고 각 분야 요리사들도 챙기는 역할까지 맡았다.
“취임 초기, 입맛을 잃어 식사를 잘 못 하는 대통령의
건강 유지를 위해 문문술 씨는 식단에 무척 신경을
썼다.”
취임 초기, 입맛을 잃어 식사를 잘 못 하는 대통령의 건강 유지를 위해 문문술 씨는 식단에 무척 신경을 썼다. 청와대 식단에는 홍어, 갯장어, 톳나물, 돌산 갓김치 같은 호남의 향토색 짙은 음식들이 등장했다. 원래 왕성한 식욕을 가진 김 대통령은 대식가로 소문이 났는데 시래깃국, 설렁탕, 매운탕 같은 국물 음식을 좋아하고 중국 음식도 즐겨 먹는 편이었다. 대통령의 입맛을 살릴 음식으로 홍어가 첫손가락에 꼽히지만, 외환위기 상황이라 한동안 먹지 않았다.
김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과도한 업무 일정을 진행했다. 해외 투자 확보와 수출증진을 위해 외국 순방을 자주 다니면서 대통령의 체중이 계속 줄었다. 재임 기간, 허리둘레가 가장 많이 줄었을 때가 IMF 시기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옷을 수선해서 입었다.
국민의 정부는 외채 상환과 함께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을 국정운영의 주요과제로 삼고
금강산 관광,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국민의 정부는 외채 상환과 함께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을 국정운영의 주요과제로 삼고 금강산 관광,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2000년 6월 13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한 가운데, 평양 순안 국제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힘차게 손을 맞잡고 뜨겁게 포옹했다. 남북 정상은 평화와 화해 협력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고 구체적인 실천 사항에도 극적으로 합의했다.
2박 3일 동안 회담이 진행된 평양 백화원에서 북측이 준비한 첫 만찬을 열었다. 이름도 생경한 칠면조 향구이, 생선 수정묵과 냉채, 삼지연 청취말이쌈, 쑥송편과 쉬움 지짐, 약밥, 육육날개탕, 젖기름빵, 소고기 굴장즙, 칠색 송어 등의 산해진미가 남측 참석자들을 즐겁게 했다. 만찬 참석자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북한 최고의 요리를 즐기며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주최한 남측의 답례 만찬에서는 비빔밥과 조선 궁중음식 정찬 코스로 순수 한식 요리를 선보였다. 특히, 비빔밥은 궁중식 골동반으로 남북의 조화와 화합의 의미를 담아 준비했다. 두 정상은 남측의 공식 만찬용 술인 ‘문배주’로 건배하며 새천년 남북의 역사적인 만남을 기념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서울과 평양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이희호 여사는 “나이 든 사람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부짖고 눈물을 쏟아내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도 많이 울었어요. 남편은 대통령 되기를 잘했다고 했지요. 평양에 간 보람이 있었다고요.”(2)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1985년 첫 상봉 이후 15년 만의 만남이었다.
(1) 인용 - 송영애 『음식이 정치다』 채륜서
(2) 인용 -「고난의 길, 신념의 길 이희호 평전 (73) 」 『한겨레』 2016. 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