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만남, 따뜻한 식사
노 대통령은 입맛과 식성이 유독 서민적이었다.
임기 동안,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 말레이시아 총리, 주르차니 페렌츠 헝가리 총리 등
여러 해외 정상들과 회담하고 오찬이나 만찬을 할 때, 비록 메뉴가 한식이라도 서양인의 입맛을 고려한 ‘호텔식 음식’은 별로 입에 맞지
않아 했다. 대신 가정식 요리는 가리는 음식이 없는 편이라 관저 주방의 요리사는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었다.
기본 상차림은 잡곡밥에 된장, 미역, 북어, 사골 곰국, 나물류, 국물김치 등이었는데 맑은 국물이 있는 담백한 음식을 더 좋아했다.
대통령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삼계탕과 쇠고기 국밥이 많이 알려졌지만, 해물도 무척 즐기는 편이었다.
운영관은 평소 외식을 할 수 없는 대통령을 위해 대구탕, 생선회, 붕어찜, 먹장어 구이 등을 올렸고 막창 구이 같은 의외의 메뉴로
대통령을 즐겁게 했다. 대통령의 추억의 음식은 모내기 국수였다. 물 국수에 부추를 얹은 것인데 농부들이 일할 때 즐겨 먹는 경상도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아무리 맛있게 먹은 음식이라도 빈 반찬 그릇은 못 채우게 했다. 더 갖다 주면 남기게 되고 남기면 결국 버리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회의 엘리트층보다 시장 상인들,
젊은 세대와 이야기하는 것을 편안해 했고 그들의
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 특이한 정치인이었다.”
해외 파견 부대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2004년 12월 8일, 유럽 3개국 순방을 마친 노무현 대통령이 서울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기자단에 양해를 구하고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 주둔한 자이툰 부대를 전격 방문했다. 철저한 보안 속에 이뤄진 노무현 대통령의 방문에 깜짝 놀란 우리 장병
3,700명은 열렬한 환호와 박수로 대통령을 환영했다.
그러던 중, 대통령을 향해 뛰어오는 한 장병이 있었다. 경호원이 막아서자 돌아서는 장병을 노 대통령이 불렀다. 당시 스무 살이었던 장병은 달려가 대통령을 얼싸안았다. 이 모습을 본 장병들의 환호성은 더욱 커졌다. 노 대통령은 장병들과 환담하고 영내 식당에서 자율배식한 음식을 함께 들었다. 노 대통령은 식사 후 “여러분 정말 감사하다. 반가움을 넘어 감사하다. 짧은 만남이지만 지극히 행복한 시간이다.”며 즉석연설을 하면서 “여러분이 흘린 땀이 대한민국 외교력, 한국의 또 다른 힘이다. 외교부 장관이 여러분이 있고 없음에 따라
말의 무게가 달라진다”라며 장병들을 거듭 격려했다.(1) 장병들과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눈 노 대통령은 지프 차량에 올라 눈물을 훔쳤다.
해외 순방이나 지방 순시에 대통령을 수행하는 보좌진들은
대통령의 진솔한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대통령이 가는 곳이 어디든 동행했던 신충진 운영관은 대통령이기에 당연히 마음과 정성을 다해 모셔야 했지만, 대통령의 인간적인
모습에 더욱 애정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대통령은 주방에서 힘들게 두 번 상 차리는 일이 없도록 누구라도 식사시간은 철저히 지
키게 했다.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아들 내외 가족이라도 밖에서 식사하고 들어 오게 했다. 주방 직원들을 배려해 일요일 아침은 더러
쉬게 했는데 그럴 때면, 대통령은 감자나 고구마, 과일, 라면 등으로 식사를 대신 했다.
취임 첫날, 대통령의 아침 식사를 담당한 김규형 씨는 대통령이 주방을 찾아 “이런 맛있는 콩나물국은 처음 먹어봤네.”(2)라고 인사
하는 대통령을 보고 지극정성으로 모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청와대 요리사들은 직접 봉화마을에 가서 퇴임한 대통령
을 만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내가 잘 얻어먹었으니 오늘은 내가 대접할게.”(3)라며 그들을 인근 식당으로 안내했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정겹고 따뜻했던 대통령과의 식사였다.
(1) 인용 - 노 대통령의 즉석연설 내용 중 발췌, 인용한 것입니다.「장병들 "대통령 방문 생각도 못해"」 『서울경제』 2004.12.8.
(2) 인용 – 김규형씨 인터뷰 내용 중 발췌 인용했습니다. MBN <청와대의 밥상> 제작팀 『대통령의 밥상』 고래미디어, P170
(3) 인용 - MBN <청와대의 밥상> 제작팀 『대통령의 밥상』 고래미디어, P176